[최용수의 미토콘드리아 세상] 미토콘드리아의 한 부모 유전법칙 벗어나기

2021.11.04 21:32 1,69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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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용수 차의과학대 바이오공학과 교수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세포에서 분리한 뒤 퇴행성 뇌질환 동물모델에 주입했더니 인지능력과 행동능력이 호전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세포에서 분리한 뒤 퇴행성 뇌질환 동물모델에 주입했더니 인지능력과 행동능력이 호전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유전자 변이는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새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도 한다. 유전자 재조합을 거쳐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개체는 후대에 유전자를 물려준다. 반면 나쁜 유전자를 물려받은 개체는 질병으로 인해 살아남지 못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된 성이 존재하는 건 우수한 유전형질을 후세에 전달해 집단의 영속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인간에게 성(性)의 구분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변이된 유전자는 자손에게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대대손손 누적되는 유전자 변이로 인 해 유전병 발현 가능성이 커진다.

유전질환으로 인간이 멸종할 수도 있다. 20세기 초 유럽의 대표적인 왕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순수한 혈통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고집하다가 아예 대가 끊어졌던 사례가 있다. 혈통이 다른 사람과 결혼해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게 인류 영속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엿볼 수 있는 예시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 유전법칙

반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mtDNA)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된 후 정자에 있던 미토콘드리아는 난자 안에서 자가포식 작용으로 모두 제거된다. 정자와 난자의 mtDNA는 서로 만나서 재 조합되는 일이 없다. 난자에 있던 mtDNA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그대로 자식에게 그 돌연변이도 물려주게 된다.

이러한 mtDNA 특성을 이용해 학자들은 인종별 mtDNA 변이를 비교하고 축적된 변이들을 크기순으로 재배열했다. mtDNA 계통도를 만들어 시간에 따른 인류의 이동 경로도 추측했다. 이를 통해 인류의 시조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오기도 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불리는 인류의 시조에게서 물려받은 mtDNA가 지금도 인류에게 유지되고 있다.


왜 남녀의 미토콘드리아는 서로 융합하지 않을까. 수정 후 배우자의 mtDNA를 제거하는 현상은 유성생식을 하는 다양한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진화학자들은 mtDNA와 핵유전자(nDNA) 간 의사소통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모계 mtDNA로 단일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핵과 미토콘드리아 간 협력이 세포의 생사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며, 혼란을 피하는 손쉬운 방법은 외부 mtDNA를 차단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확실한 건 이러한 한 부모 유전 방식으로 인해 mtDNA 돌연변 이는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고, 인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최용수의 미토콘드리아 세상] 미토콘드리아의 한 부모 유전법칙 벗어나기
치료제가 없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

어머니 mtDNA에 돌연변이가 있다면 자식들은 유전질환을 갖고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신생아 5000명 중 1명꼴로 근육쇠약증, 뇌졸중, 치매, 당뇨와 같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을 갖고 태어난다. 그렇다고 모든 미토콘드리아 질환이 모계에서 받은 mtDNA에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건 아니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사용되는 약 1000개 단백질은 nDNA에 정보가 담겨 있다. 이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질환은 부계, 모계 또는 부모 모두에게서 영향을 받으며 유아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발병할 수 있다.

성인의 경우 고장난 미토콘드리아가 제거되지 않고 세포 속에 축적되면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세계적으로 성인 10만 명당 2.9명이 미토콘드리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난자엔 약 10만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수정란은 자궁에 착상되기 전까지 할구 분할을 통해 세포질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를 나눠 갖는다. 배아 발생 시 뇌조직으로 분화가 될 세포에 변이된 mtDNA가 많이 존재했다면 정상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뇌질환이 발병할 수 있다.

변이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에 활성산소(ROS)를 많이 만들어 낼 것이고 이는 더 많은 mtDNA 변이를 만들어 신경세포 기능이 마비되는 악순환을 낳게 된다. 이렇듯 미토콘드리아 질환은 증상이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퇴행성 질환이란 특징이 있다.

미토콘드리아 질환의 주된 증상은 심혈관계, 신경계, 그리고 노화에 따른 퇴행성 질환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질환으로 아급성괴사성뇌병증(리이증후군), 레버씨시신경위축증, MERRF증후군, 멜라스증후군 등이 있다. 이들 질환에 근본적인 치료제는 아직 없으며 단지 증상 완화를 위한 약 처방이 전부다.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제는 코엔자임큐, 비타민B, 레보카르니틴 등이 있다. 임상 진행 중인 치료제도 완치가 목적이라기보단 증상 완화제에 가깝다.

미토콘드리아 치환술이 만든 ‘세 부모 아기’

2016년 6월 멕시코에서 3명의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기가 태어났다. mtDNA 변이가 일어난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추출한 뒤 기증받은 난자의 핵과 교체한 후 체외에서 수정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태어난 아이는 부모에게서 한 쌍의 nDNA를, 기증받은 난자로부터 mtDNA를 물려받았다. 생물학적으로 3명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세 부모 아기다.

아이의 어머니는 리이증후군을 나타내는 mtDNA 변이를 갖고 있었다. 본인은 운 좋게도 병이 발현되지 않았지만 유전자를 물려받은 다른 2명의 아기는 각각 생후 8개월, 6세 때 사망했다. 건강한 아이를 갖고 싶던 부부는 미토콘드리아 치환술로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아직은 미토콘드리아 치환술에 대해 윤리적인 이유와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도 작지 않은 편이다.

이와 달리 출생 이후 서서히 나타나는 미토콘드리아 질환은 치료 방법이 없다. 다양한 약물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유전자 변이를 치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전자 편집을 이용한 의료기술 또한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엔 퇴행성·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줄기세포가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허가된 줄기세포치료제는 7종이다. 다양한 질환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만큼 머지않아 허가받은 치료제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줄기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전달

줄기세포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줄기세포는 체내에 문제가 생긴 곳으로 이동해 손상된 세포로 분화하거나 재생 촉진과 염증 억제에 관여하는 사이토카인을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줄기세포치료제는 줄기세포 유래 단일 물질에 의한 치료 효과라기보다는 복합적인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치료 기전을 명쾌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규제기관으로부터 허가받기 위해선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보다 확실한 자료가 필요하다.

2012년 5월엔 줄기세포가 자신의 미토콘드리아를 손상된 세포에 전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폐질환 동물모델에 인간 골수중간엽줄기세포를 투여한 실험이었다. 마우스 모델의 폐에 도착한 줄기세포는 죽어가는 폐세포에 자신의 미토콘드리아를 전달하고 사라졌다. 폐세포로 들어간 인간의 미토콘드리아는 활성산소 발생을 감소시켰고 염증반응을 억제했다. 폐질환에 걸렸던 마우스는 줄기세포의 미토콘드리아로 인해 회복됐다.

최근 미토콘드리아 전달은 줄기세포의 치료 기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어떤 연구자는 ‘줄기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전달하는 운반체’란 표현까지도 사용한다. 죽어가는 세포는 주변 세포에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줄기세포가 이 신호를 감지하고 근처로 이동해 생명의 손길을 내밀고 미토콘드리아를 나눠준 뒤 망가진 세포의 대사를 되돌려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줄기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만 분리해 다른 세포에 넣어주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배양 중인 세포에 손상을 일으킨 뒤 줄기세포에서 분리한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전달해줬더니 세포들이 다시 살아났다.

필자도 분리된 미토콘드리아를 다른 세포에 쉽고 빠르게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재생 능력이 강화된 줄기세포나 암세포 살상 능력이 향상된 면역세포를 제조할 수도 있다.

특정 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미토콘드리아에 부착한 유전자나 단백질을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확장성 있는 플랫폼 기술로 응용될 여지가 충분하다.
[최용수의 미토콘드리아 세상] 미토콘드리아의 한 부모 유전법칙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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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속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2005년 미국 UC버클리·스탠퍼드대 연구진 은 늙은 쥐와 어린 쥐의 혈관을 연결해놓자 늙은 쥐의 근육·간·심장 세포가 회복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엔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청년의 혈장을 수혈해 일상생활 능력이 개선되는 걸 확인했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혈액을 사고파는 기업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수혈은 감염병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도 연구자들은 혈액 속 ‘회춘’ 효과를 지닌 성분을 찾고 있다. 늙은 핏속의 낡은 단백질을 새것으로 바꾸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혈액 속엔 수많은 단백질과 세포가 공존하고 있다. 세포에서 떨어져나온 미토콘드리아도 있다. 이 미토콘드리아의 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토콘드리아가 작은 세포막에 둘러싸여 있거나 홀로 유리된 채 혈액 속을 떠돌아다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유리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은 아직 불명확 하지만, 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미토콘드리아를 주변 세포에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볼 때 젊은 사람에게서 받은 혈 액을 통해 얻는 회춘의 효과가 건강한 미토콘드리아 때문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을 가져본다.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늙은 세포에 전달하면 회춘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볼 법하다.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퇴행성 뇌질환 동물모델에 주입했더니 인지능력과 행동능력이 호전됐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2018년 미국 보스턴어린이병원의 매컬리 연구팀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채 태어난 아이들에게 환자 근육에서 분리한 미토콘드리아를 심장 근육에 직접 이식했더니 질환이 호전됐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 부모 유전을 고수해 온 미토콘드리아 세상에서 혈통이 다른 미토콘드리아를 인위적으로 공존시키면 근본적인 질병의 원인을 차단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음 연재에선 미토콘드리아를 다양한 질환 모델 동물에 이식한 뒤 어떠한 효과가 있었는지를 알아보고 이식 기술의 가능성과 우려 사항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자 소개>
[최용수의 미토콘드리아 세상] 미토콘드리아의 한 부모 유전법칙 벗어나기

최용수


인하대에서 생물공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9년 차의과학대 바이오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줄기세포를 연구하던 중 2014년 줄기세포가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손상된 다른 세포에 전달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읽고 미토콘드리아 연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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